누구나 다 아는 보드게임 <할리갈리>에 대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할리갈리, 얼마나 아세요?
이상곤 기자
new@toynews.kr | 2016-12-29 23:18:47

▲ © 캐릭터 완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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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완구신문】이상곤 기자 = 2002년 보드게임 카페가 생긴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보드게임들이 소개되었지만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게임이 무엇일까?

 

물어볼 것도 없이 <할리갈리>다. 돌아가며 과일 카드를 펼치다가 과일이 5개가 되면 재빨리 종을 쳐야 하는 순발력 게임 <할리갈리>. 한 줄로 설명되는 이 간단한 규칙만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종을 두들기게 만든 게임이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2000년대 초반부터 루미큐브, 젠가와 함께 보드게임 삼신기(三神器)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지금까지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만 현재까지 판매량 200만 개를 넘어섰고, 나이와 성별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할리갈리의 팬을 자처한다. 할리갈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이 “물론”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할리갈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이 멈칫하고 말 것이다. 과일 5개가 모이면 종을 쳐야 한다는 것, 그 외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같은 과일이 다섯 개가 되면 종을 쳐라’라는 한마디로 압축되는 간단한 규칙, 속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환경, 재미를 극대화하는 소도구 ‘종’의 사용 등 <할리갈리>의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게임 요소는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게임이 워낙 단순해서 별로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게임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의 개척은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할리갈리>의 핵심 소도구인 종은 지금이야 너무나 보편화 되어있고, 반응속도를 겨루는 보드게임이라면 당연히 들어가는 구성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런 풍조도 <할리갈리>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할리갈리>의 과일은 딸기, 바나나, 라임, 자두 4종이며, 카드에는 각각의 과일이 1개에서 5개까지 그려져 있다. 게임을 할 때는 먼저 카드를 잘 섞은 뒤 모두 똑같이 카드를 나눠 갖는다. 카드 더미는 그림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은 채 각자 앞에 둔다. 이제 하는 일은 서로 돌아가며 각자의 카드 더미에서 맨 위에 있는 카드를 1장 펼치는 일. 플레이 인원만큼의 카드가 펼쳐지고 한 장씩 바뀌는 상황이 계속된다. 

어떤 한 종류의 과일이 5개가 되면 재빨리 종을 쳐야 한다. 종을 가장 빨리 친 사람은 현재까지 테이블에 쌓인 카드들을 획득한다. 각자가 가진 카드 더미의 두께는 소위 말하는 피통(HP)의 개념이다. 따라서 카드를 모두 잃은 사람은 게임에서 탈락, 최후까지 남은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말로는 이렇게 건조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 게임 분위기는 총잡이나 검객의 결투를 연상시킬 만큼 긴장감 가득하다. <할리갈리>의 대만판 제목이 ‘독일 심장병’인데 게임의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카드가 한 장씩 펼쳐질 때마다 상황이 바뀌고, 같은 과일 5개가 언제 뜰지 모르는 데다 막상 과일 5개가 뜨면 가장 손이 빠른 한 사람만이 카드를 독식한다. 이렇게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들이 군더더기 없이 마련되어 있다.


<할리갈리>는 지난 10년간 학교와 유치원 등 교육 기관에도 많이 보급되어 어린이라면 다 아는 게임이 되었으며, 해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졌다. 몇 해 동안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의 어린이 선물로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 게임이 되어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지금은 어지간한 언론이나 방송에서 <할리갈리>가 언급될 때도, 굳이 <할리갈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윷놀이가 어떤 게임인지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할리갈리>라는 이름은 실은 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이름이다. 1991년,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가 훗날 <할리갈리>의 제작사가 되는 독일의 아미고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가져간 <할리갈리> 프로토 타입의 이름은 ‘테이크 파이브(Take 5)’였다. 같은 그림이 다섯 개가 되었을 때 액션을 해야 한다는 게임 규칙을 그대로 표현한 이름이다.

 

아미고는 이 ‘테이크 파이브’를 정식 발매하면서 게임 이름을 새로 지었는데, 프로토 타입의 발상과는 달리 카드의 테마인 과일 부분에 착안해 이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이 얻은 새 이름은 <투티 프루티(Tutti frutti)>. 이탈리아어로 ‘모든 과일’이라는 뜻이며, 여러 종류의 과일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등에 쓰이는 관용어다.

 

 투티 프루티라는 용어는 미국에서는 1955년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가 발표한 노래 제목으로 유명한데, 1950년대를 풍미했던 블루스/록 계열 가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자기 음반에 수록을 시도한 명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한국 CF에서도 자주 나와 여러 사람에게 친숙하게 들리는 곡이다.


<투티 프루티>는 여러모로 친숙하게 들리는 이름이고 시장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태어난 지 2년 만에 개명을 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상표권. <투티 프루티>가 태어난 지 2년이 지난 1993년, 한 오스트리아의 회사가 라는 이름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했고 아미고 측에 2%의 로열티를 지급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아미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티 프루티>의 이름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바뀐 이름이 우리가 잘 아는 <할리갈리>다.


그런데 도대체 <할리갈리>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할리갈리>의 작가 하임 샤피르에 따르면, 별다른 뜻은 없고 그저 듣기에 기분 좋은 어감일 뿐이라고 한다.

 

뜻이 없더라도 이름을 붙인 이유는 있을 터. 아미고 측에 다시 물어보니 독일에서 할리갈리라는 말은 즐거운 분위기, 액션 등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나이트클럽 파티나 디제잉 파티 등에서 할리갈리라는 수식어를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즐거운 소동을 형용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양의 홀짝 게임과 비슷한, 상대의 주먹 안에 씨앗을 몇 개 쥐고 있는지 맞추는 오래된 게임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상대에게 주먹을 보여주며 “할리갈리, 얼마나 들었게?”라고 말하는 법칙인데, 여기서 할리갈리란 말이 쓰인 의미는 아마 우리 식으로는 “준비, 땅”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할리갈리라는 말이 가진 의미들을 조합하면 확실히 보드게임 <할리갈리>의 이미지와 그야말로 걸맞는다. 상표권 문제 등 예기치 않은 일들로 바뀐 이름이지만 어찌 보면 전화위복인 셈이다.


<할리갈리>는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의 보드게임 작가 하임 샤피르의 대표작이다. 하임 샤피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공한 보드게임 작가이며, 40년 가량 창작 활동에 종사한 원로다.

 

 <할리갈리>는 그가 만든 보드게임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한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전 세계 20개 이상 국가에서 정식 발매됐으며 ‘쉽고 재미있는 보드게임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 되었다. 이 간단해 보이는 작품도 사실 3년 정도의 개발 기간과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다.


하임 샤피르에게 게임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즐거운 아이디어가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힘이며, 이것이 잘 구축된 작품은 당장 유행하지 않아도 꾸준히 인기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게임 철학이 말해주듯, 하임 샤피르는 간단한 게임 분야에서 굵직한 작품을 다수 만들었다. 물론 이 가운데 상당수 제품이 국내에도 정식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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